경향신문 뉴스메이커 (200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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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9-16 10:51 작성자by. supan본문
당사 교육원인 서초아름어린이집 및 동작교육센터를 취재했습니다
[사회]어! 여즘 애들도 주산을 하네
수리능력·집중력 향상 교육 프로그램으로 각광… 전국 5000여 학원 성업
주산이 돌아왔다. 지난 8월 2일 태국 방콕에서 막을 내린 ‘태국황실공주배 국제주산·암산수학대회’에서 김지윤양을 비롯해 한국대표 5명이 초·중등부에서 2~3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려 14년 만에 출전해 얻은 결과라 기쁨은 더욱 컸다. 주산학원이 많던 1980년대만 해도 국제대회에 나갔다 하면 1위를 독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주산강국이었다. 그러나 주산인구가 줄어들면서 1991년 대만에서 열린 국제대회 이후에는 출전할 선수조차 구하지 못하던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이처럼 오랜만에 한국인의 손놀림 위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은 2003년부터 불기 시작한 주산 붐 때문이다.
한 주산교육 업체가 2003년 대대적으로 ‘수학능력을 높이려면 암산이 중요하고, 암산을 잘하려면 주산만한 게 없다’는 문구를 내걸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 계기가 됐다. 2003년 3월 문을 연 주산암산교실 ‘예스셈’은 1년 만에 2000곳의 가맹점을 확보하는 실적을 올렸다. 현재의 가맹점 수는 2500여곳. 이들은 유치원생·초등학생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을 고민하다가 주산과 접목시켰고, 수학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 주산을 경험한 적이 있는 30~40대 학부모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국제주산수학연합회 한국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주산학원은 5000여곳, 주산인구는 10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서울 상도동에서 주산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나성운씨(38). 그는 최근 주산 붐을 느끼고 있다. 1980년에 주산 국가대표 1위에 입상할 정도의 실력자였던 그는 재능을 살려 2001년 2월 주산학원 문을 열었다. 주산 붐이 일지 않았던 때라 학생수는 5명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2003년부터 학생수가 하나둘 늘더니 올해초부터는 급격히 늘었다. 그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해말까지 학생수가 50여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계산기 등장 이후 ‘쓸쓸한 몰락’
그러나 과거의 주산과 현재의 주산은 약간 다르다. 과거의 주산은 계산을 위한 도구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주산 자격증은 취업자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격이었다. 계산을 할 만한 도구가 주판 이외에는 없었던 탓이다. 반드시 필요한 자격이라 여겨 많은 어린이가 주산학원으로 몰렸다. 손놀림 종목에 강한 민족이라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 당시 학생들은 세계대회에서 상위권을 휩쓸었다. 당시에는 서양관광객이 서울에 오면 은행을 둘러보는 것이 관광코스 중 하나였다. 돈을 세고 주판을 놓는 은행 여직원들의 ‘초인적인’ 손놀림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원할 줄 알았던 주산의 아성은 얼마 가지 않았다. 1973년 한국 샤프가 일본에서 전자계산기를 들여와 처음 시판했을 때 이미 주산의 운명은 결정돼 있었다. 1970년대말 대만제 값싼 제품이 들어오면서 주산을 가르치는 곳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주산경기대회도 하나둘씩 줄어들었다.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자, 일부 주산학원은 머리를 썼다. 각 가정에 VTR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당시 학원에서는 학생들이 보기 힘든 일본의 만화영화 비디오를 토요일 오후마다 틀어준다며 동심을 유혹했다. 이에 홀린 어린이들은 부모에게 생떼를 써가며 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주산학원에 다니던 아이들은 컴퓨터 학원을 찾기 시작했다. 주산은 1990년대 중반 상고의 정규과목에서 사라졌고, 노동부는 2001년도 국가기술자격시험에서 주산부기시험을 폐지했다. 상공회의소가 주최하던 급수시험도 사라진 지 오래다. 쓸모없어진 주판은 한동안 어린이의 스케이트 대용품으로 사용되다가 서랍 깊숙이 처박히는 신세가 됐다.
과거에는 계산을 위한 주산이 중심이었다. 이런 까닭에 주판을 빨리 놓으면 놓을 수록 더 나은 대접을 받았다. 너나 할 것없이 급수경쟁에 뛰어든 이유다. 하지만 이제 계산을 위한 시대는 갔다. 두뇌계발을 위한 시대인 것이다. 물론 암산능력의 향상을 통해 계산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계산을 잘하게 되면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수학 전반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주산 교육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수리능력은 기본이고 요즘 아이들에게 부족한 집중력을 높일 수 있고, 창의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된다. 아예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주산 수업중 눈을 감고 ‘메트로놈’ 소리를 듣게 하는 청각집중훈련을 통해 집중력 향상을 꾀하는 강사도 있다.
산만한 성격 고치고 자신감도 부쩍
8월 1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서초아름어린이집에서는 주산수업이 한창이었다. 5~7살 어린이 13명이 빠른 손놀림으로 주판을 놓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주판이 흔들리면 주판알이 흔들려 오답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아이들은 조심스럽고도 신속하게 주판알을 놓으며 김미자 원장(42)이 불러주는 숫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들에게 주산은 이미 놀이였기 때문이다.
김순덕씨(45)는 이곳에 7살과 9살 형제를 보내 주산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원래 동생 성현군이 이곳에서 주산을 배웠는데, 집중력이 좋아졌다고 한다. 주산 수업시간에 집중을 반복한 결과라고 한다. 주판을 만지작거리면서 스스로 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그래서 형 성휘군도 이곳에 보냈고 아이들에게 새로운 놀이가 생겼다. 집에 있을 때에도 서로 암산 문제를 내고 답을 맞힌다. 주산을 하다보면 주판을 머리속에 그릴 수 있어 암산이 가능하다.
김모씨(43·여)도 이곳에 초등학생 아들을 보내고 있다. 그의 아들은 잠시도 한 자리에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산만했다. 학교에서 주의를 자주 받던 아이는 점점 의기소침해졌다. 이런 아들을 보면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김씨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이곳을 소개받았다. 며칠을 고민했다. ‘과연 아들이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아들의 변화에 깜짝 놀라고 있다. 원래 똑똑했던 아들은 쉽게 주산을 익혔고, 이는 자신감 회복으로 이어졌다. 산만하던 성격도 많이 나아졌다. 이제는 학교에서 수학문제 하나만 틀려도 왜 틀렸을까 따져볼 정도로 공부에도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주산 덕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김씨는 요새 아들이 주판을 놓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지난해 한 일본 언론이 일본 초등학교 500명을 상대로 조사해본 결과 응답자의 15%가 주산을 배우고 있다는 대답이 나왔다. 영어 다음으로 주산을 배우는 이가 많다는 결과였다. 주산교육이 단절됐던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 등 외국에서는 주산이 여전히 인기다. 두뇌계발을 비롯한 다양한 효과 때문이라고 한다. 태국만 해도 교육부장관이 직접 시상을 할 정도로 주산대회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높다. 국제주산수학연합회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외국에는 주산의 장점이 널리 알려져 장려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옛날 것으로만 취급해 아쉽다”며 “주산인구가 늘어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주산의 장점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정재용 기자 jj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