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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21.8.30)2세기 中서 ‘막대·구슬’ 형태 진화…1800년간 ‘믿을 만한 계산수단’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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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9-16 11:54 작성자by. su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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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모들 사이에 연산능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주산 열풍이 불었던 2000년대 초, 서울 압구정동의 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이 주산을 배우고 있다. 연합뉴스

■ 기술이 지나간 자리 - ⑤ 주판

근대 시스템 속 살아남아 은행·경리 취업에 ‘필수 요건’… 92년 대선때도 주산 유단자에 득표수 집계 맡겨
70~80년대 전자계산기·컴퓨터로 인해 영향력 줄다 서울올림픽 종합전산망 성공으로 급격 퇴보…96년 상업고 교과목서도 퇴출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전국 15개 시·도 선관위에서 각각 300명씩, 총 4500명의 주산 유단자를 소집했다. 은행원, 교사, 상업계 고등학교 학생 등의 주산 유단자들에게 득표수 집계를 맡긴다는 것이었다. 선관위는 컴퓨터 집계 시스템을 이미 구축해 놓았지만, “개표과정에서의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주산으로 수동 집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바로 전 대선인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는 민주화 투쟁의 결실로 16년 만에 다시 치른 직선제 선거였다. 그런데 투표와 개표 과정에서 여러 건의 관건선거 또는 부정선거 시비가 있었고, 이를 기억하는 이들은 5년 뒤에도 선관위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사실 컴퓨터가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부정선거 가능성을 걱정하는 국민은 1990년대 초반까지도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했던 것이지, 컴퓨터 대신 주산을 쓴다고 안심했다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1990년대 초반까지도 주산이 컴퓨터만큼 신뢰할 수 있는 계산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계산 과정이 눈에 보이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속도와 계산의 정확성 면에서는 주산이 컴퓨터를 충분히 대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은 이가 받아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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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전국 학생 주산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문제 풀기에 열중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래된 주산, 근대의 기술로 다가오다

주산은 주판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셈법을 말한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한자로 구슬 주(珠) 자를 쓰기도 하고, 셀 주(籌) 자를 쓰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주판을 “소로반(算盤)”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주판을 이용한 계산에 숙달되면 손에 주판이 없어도 머릿속에서 주판알을 옮기는 암산(暗算)의 경지에 이른다.

주판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기원전 중동 지역에서 평평한 판에 홈을 파서 구슬을 좌우로 옮기며 계산을 했고, 이 도구가 중국으로 건너가서는 2세기 무렵에는 막대에 구슬을 꿰어 틀에 고정하는 형태로 진화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한반도에는 조선 중기 문헌에 “주산”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니 대략 15세기 무렵 소개됐는데,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산이 없이도 조선의 수학자들은 사칙연산은 물론 고차방정식 풀이와 같은 어려운 계산까지 척척 해냈다. 산가지(算木)를 이용한 계산술이 널리 보급돼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15세기 초쯤 주판이 소개됐고, 에도 막부 시대에 민간에 널리 보급됐다. 조선의 서당에 해당하는 에도 시대의 교육기관 데라코야(寺子屋)에서는 주요 과목으로 “읽기, 쓰기, 주판”을 꼽을 정도였다. 이렇게 주산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산은 일본의 전통 수학, 즉 “와산(和算)”의 특징 중 하나가 됐다.

메이지유신 후 주산은 잠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전면적인 서구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주산은 전통 수학인 와산의 일부이므로 새로운 근대식(서양식) 수학 교육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1870년대에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민간에 뿌리내린 주산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져서, 1900년대를 전후해서는 다시 주산이 학교 교육에 포함됐다.

이렇게 주산은 근대적 시스템 안에 살아남은 전통 도구라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고, 일본의 상업과 금융업이 발달하면서 저변을 더욱 확고히 다지게 됐다. 1930년대에는 은행이나 경리직에 취업하려는 이들은 “표준 이상의 주산 실력”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분위기가 됐고, 이를 노린 주산 자격증 시험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본래 윗줄 2알, 아랫줄 5알로 만들었던 중국식 주판도 이 시기에 윗줄 1알, 아랫줄 4알로 개량됐다.

일제강점기의 한반도에도 이 흐름이 그대로 이어졌다. 상업계 학교의 주산 교육, 주산 자격시험과 경연대회 등의 소식이 1930∼1940년대가 되면서 신문과 잡지 기사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취업과 사회생활의 기회가 제한돼 있던 여성들에게, 주산은 도시 사무직으로서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귀중한 기술이었다. 사무실의 필수품이었던 주판은 계산 도구일 뿐 아니라 직선을 긋고 종이를 자르는 데에도 요긴하게 쓰였다.

광복 후 고도성장의 시대에도 주산은 같은 역할을 이어받았다. 은행에 취직하려면 2급 이상의 주산 자격증이 필수였다. 대한실업교육회가 1959년부터 시작한 주산자격증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많게는 연간 100만 명에 이르렀다. 주산은 부기와 함께 상업계 고등학교의 필수 과목이었으며, 명문 상고의 주산 우등생들은 국제대회(사실상 한국, 일본, 대만 3개국의 경쟁이었다)에 대표선수로 출전해 상을 휩쓸곤 했다. 전국체전에서도 국제대회 출전 경력을 자랑하는 “단발머리 여고생들”이 기록실에 상주하며 시도별 종목별 점수 집계를 맡았다. 대통령선거에서 주산 유단자에게 개표 집계를 맡기겠다는 것도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고, 이런 역사적 경험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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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호 교수
◇청년 취업에서 어린이의 “잠재력 개발”로

하지만 1980년대로 접어들자 주판의 시대가 저무는 조짐들이 보였다. 탁상용 전자계산기는 1973년 한국샤프가 처음 소개했지만, 1970년대 말 값싼 대만산 제품이 들어오면서 급격히 보급이 늘어났다. 전국체전 종합상황실에는 여전히 상고 학생들이 나와 있었지만, 이들도 1981년부터는 컴퓨터와 함께 일하게 됐다. 1988년 올림픽 서울 유치가 결정되면서 모든 관련 이벤트들이 올림픽 개최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시험 무대로 이용됐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실전 테스트를 거쳐 완성한 서울올림픽 종합전산망 ‘WINS’는 올림픽의 큰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았고, 한국은 이렇게 주산 시대를 지나 정보화 사회로 진입했다.

실업교육으로서 주산이 지녔던 의미가 차츰 흐려지면서, 주산 교육의 초점도 어린이 시장으로 옮아갔다. 즉시 취업이 가능한 기술들로 “주산, 부기, 타자”를 묶어서 가르치던 학원들은 어린이들의 잠재적 수학능력을 높일 수 있는 기술들로 “주산, 암산, 속독”을 묶어 가르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교과과정에는 여전히 주산 단원이 남아 있었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실제로 가르치는 곳은 거의 남지 않았다.

1996년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제6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상업고등학교의 “주산”과 “타자” 과목이 사라지고, 각각 “문서작성실무”와 “전자계산일반”으로 대체됐다. 총무처가 부여하는 공무원 가점 항목에서도 주산과 타자가 빠지는 것으로 결정됐고, 그에 따라 기업에서도 주산과 타자를 입사 또는 승진 가점에서 빼기 시작했다. 주산자격증시험도 1995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한때 국내 수요의 80%를 차지했던 “옥산주판”을 생산했던 ㈜한국산기도 1996년 말 문을 닫았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1996년 제15대 총선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던 신한국당 이명박 후보는 “주산 놓던 시절의 사람들이 컴퓨터로 모든 게 처리되는 시대에도 나라를 지도하겠다고 떠든다”며 자신이 새로운 정치를 할 적임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산의 효용이 갑자기 늘어나거나 줄어든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 효용에 주목해 주산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도 남아 있다. 다만 주산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이 바뀌었을 뿐이다. 주판보다 효과적인 전자계산기라는 도구가 등장했고, 어린이 수학교육의 주안점도 사칙연산을 숙달시키는 것에서 논리적 사고능력을 기르는 것으로 바뀌어 갔다. 이렇게 환경이 바뀌면서 같은 기술이라도 위상이 바뀌어 가는 것은, 제 역할을 다하고 무대를 내려가는 모든 기술이 공통적으로 겪는 운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산이 예전의 영광은 잃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김태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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